Monday, September 12, 2022

 타라와 전투의 숨겨진 이야기들

타라와 전투는 2차대전 태평양 전쟁에서 미드웨이 전투와 과다카날 전투등을 거쳐서 반전을 시작한 미군이 본격적인 진격을 시작하는 첫걸음에 해당하는 전투였다.
1943년 11월 20~23일 까지 정확하게는 76 시간 정도 걸린 전투에서 1,000여명의 전사자를 기록하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이오지마등과 함께 손꼽히는 피를 부른 전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치열했던 전투 과정에는 흔히 그냥 지나치기 쉬운 몇가지 군사적 역사의 시작점에 해당되는 내용들이 숨겨져 있다. 워낙 치열한 전투에 연이어진 다른 태평양 전쟁의 수많은 전투에 의해서 묻혀 버렸지만 사실 밀리터리 역사에 매우 중요한 시발점들이 되었던 전투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몇가지를 지금부터 알아보고자 한다.







1. 해병대 항공대의 독립적 전술허용
과달카날등에서도 시작된 문제였지만 해병대는 해군 항공대의 지원에 대해서 높은 신뢰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직접 항공대를 통제하기를 원했다. 상륙작전시 근접 항공 지원을 해군이 아닌 해병 항공대가 직접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통제를 하려면 그 범위안에 해군의 항공모함들이 포함되어 버리는 바람에 해군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결국 초반에 항모를 통한 공중지원, 그리고 해병대가 활주로를 만들거나 차지하게 되면 이를 이용한 해병대 항공대의 운영으로 결론을 내게 되었다.
결국 해군 항공대에서 독립된 해병대 항공대의 독자적 운영이 시작된 전투가 바로 타라와 전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술적 운영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와서 각종 상륙함의 운영과 해리어, F-35B와 같은 기종의 운영 등으로 해병대 항공대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대규모 해병 항공세력을 운영하는 군대는 지구상에 거의 희귀한 수준에 불과한다.^^
2. 상륙장갑차의 활용
미군의 경우 2차대전 발발 이전부터 오랫동안 태평양 전장을 대상으로 하는 상륙작전을 구상하고 연습하고 있었다. 먼 거리를 항해하여 적이 방어하는 지형에 상륙하는 상황을 고민했고 다양한 전장 상황에 따른 전술을 개발하고 이에 따른 선박을 설계 제작하였으며(물론 제작 과정에 관련 기관들끼리의 충돌은 상당히 심했었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발전형 선박들을 제작해 내기도 했다. 이런 선박들은 최종적으로는 2차대전 종전시기까지 제작이 마무리 되지 않은 선박들도 있었고 대부분 종전 후에 민간에 이전 되었다. 더불어 개발된 여러종류의 보트와 상륙용 선박들이 태평양 전쟁의 주요 일꾼으로 투입되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다양한 상륙정들은 태평양의 환초라는 복병에 커다란 도전을 받게 된다. 일반적인 바다를 가로질러 해안에 상륙하는 방식의 상륙함들은 환초라는 지형에 대하여 태생적 한계를 느끼게된다. 이러한 환경의 문제를 인식한 해병대 내부의 고민은 커져만 가고 있었는데, 과달카날 상륙작전때 선보인 LVT(landing Vehicle Tracked) 에 대한 기억을 당시 2해병사단의 작전 참모로 있던 David M. Shoap 중령이 떠올리게 된다. * David M. Shoap 중령은 나중에 장군으로 진급하면서 명예 훈장을 받은 참전 군인이 되며 베트남 전쟁 등에 대해 저명한 저술가로 유명해진다.



LVT는 사실 민간에서 늪지용으로 개발된 형식의 차량으로 이를 군용으로 도입하였지만 강화된 방어나 무장에 대해서는 고려하고 않고 있었다. 타라와 전투를 통해서 방어용 장갑과 무장을 갖추게 된 상륙 장갑차 LVT의 등장은 상륙작전에 생존성과 더불어 수송면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환초에 의해서 많은 상륙용 보트들이 1km 밖의 거리에서 병사를들 내려 놔야만 했고 심지어 각종 보급물자의 수송에도 많은 어려움을 가져 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에 LVT를 거론하는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바다위에서 장비를 싣고 발진해서 해안가에 병력을 내려 놓는 방식이 아닌 직접적으로 육상으로 올라가서 전투를 치룰 수 있는 방식의 상륙용 장갑차는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개발과 업그레이드를 거쳐서 지금의 해병대에는 둘도 없는 필수 장비로서 자리 잡아 사용되고 있다.
3. UDT, Nay SEAL의 시작
LVT가 활약하게 된 것은 태평양 환초라는 지형적 특성 이외에도 당시 상륙장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것에 의한 험난한 과정이 배경이 되고 있다.
당시에 미군이 사용했던 해도는 100년이 넘은 1841년에 제작된 해도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산호초와 수심에 대한 정보가 크게 부족하였지만 일반적인 상륙함이 요구하는 120cm의 수심을 간조시에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참모들 사이에서 유지 되고 있었다. 해당 해역에 대해 정보를 아는 소형선박의 선장들이나 해당 지역에 드나들었던 사람들에 의해서 상륙작전을 위해 수로도가 작성 되었다.타라와 전투의 해병대를 총 지휘할 해병 2사단장인 스미스 소장마저도 작성된 수로도를 바탕으로 수심 120cm 정도의 수심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작성된 수로도는 15년간 타라와 환초지역에서 살았던 뉴질랜드의 예비역인 홀랜드 소령에 의해 의문이 제기 되었다. 홀랜드 소령의 판단으로는 상륙작전이 시행되는 날짜는 조금때로서 (** 조금은 물의 이동이 적지만 수위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시기이다. 반대로 사리때는 물의 이동이 많고 최고 수위와 최저 수위의 차이가 많이 발생한다=> 낚시에 반드시 참고해야 할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 편집자 주) 수로도에 표시된 사리를 기준으로 하는 수심과는 차이가 날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상륙작전시에 충분한 수심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 했다.(*** 이 결과로 결국 LVT들의 활약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일반 적인 상륙용함정들과 달리 LVT는 달려있는 궤도를 이용해서 환초지대를 타넘어 갈 수 있었다)
결국 곤란해진 해병대 참모팀은 수로도를 작성한 사람들에세 홀랜드 소령의 의견을 첨부해서 다시 질의를 했는데 돌아온 답변이 조금때라도 그 정도 수심은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볍이었다.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지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내용이다. 보통 낚시를 가게 되면 첨단 장비와 화려한 복장을 착용한 낚시꾼들의 조과가 반바지 입고 슬리퍼 끌고 온 현지 낚시꾼의 조과에 비할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새겨 들러야 한다. 현지인이 진리다!!- 편집자 주)
여하튼 이러한 결과에 대해서 스미소 소장마저도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고 작전에 동행한 종군기자에서 산호초에 내래서 걸어서 상륙하게 될 확률이 절반쯤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사실 그 절반도 상당히 후한 점수가 되고 말았다.
결국 전투 종료 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전에 상륙지점에 투입되어서 각종 정보를 얻어올 특수부대의 활용이 요구되게 되었다. 이미 다른 전투에서도 비슷한 역할의 부대들이 활용되었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는 쉽게 받아들여 졌다.


David M. Shoap (타라와 당시 중령) 장군. 명예 훈장도 받은 뛰어난 전쟁사 저술가이기도 하다.


결국 UDT 수중폭파팀이라고 불리우는 팀이 만들어 졌는데 이러한 명칭은 초기 대원들이 대부분 해군 건설대에 속해있던 병력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부대는 사전에 상륙지역에 침투하여 해저 지형을 조사하고, 수심을 측량하고 작전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사전 폭파해서 처리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개구리맨들이라고 불리우던 이 UDT 부대는 지속적인 발전을 통해서 이어져 내려왔고 현재는 네이비실이라고 불리우는 SEAL 팀으로 그 역사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이야 공중.지상.해상을 가리지 않은 전전후 특수부대가 되었지만 (훈련 과정에는 몸으로 때우는 과정뿐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머리쓰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SEAL 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상륙지점의 수심을 재고 폭약을 설치하던 개구리맨들의 역사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타라와 전투는 이 외에도 물건 수송용 팔레트의 적극적 도입. 기습작전을 배제한 체계적인 상륙전 포격, 보다 강력한 근접지원 항공기의 폭탄요청으로 네이팜탄 도입 등등의 여러가지 전술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 전술의 역사상 무척 중요한 배경이 되는 전투라고 할 수 있다.
현대전에서 이 정도 대규모 상륙작전이나 해병대를 운영하는 나라는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지금도 활용되고 있는 많은 전술적 기술들이 이 타라와 전투를 통해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기억해 볼만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 출처 : 구글 맵. The Pacific War Companion(From Pearl Harbor to Hiroshima), 미 해병대 공식 사이트 몇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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